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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아의 근작들: 느슨하고 유연하며 애틋한 전체

홍지석(미술비평가, 단국대 초빙교수)

 

조민아의 회화는 ‘다양하고 복잡한 모티프들의 중첩’을 특징으로 한다. 다양한 단편들을 조합하여 전체를 만들어내는 방식이야말로 조민아 회화의 가장 특징적인 양상이다. 예컨대 <혼합된 세계>(2020)에는 많은 이미지 단편들이 뒤섞여 있다. 거기서 나는 ‘가마에서 도자기를 굽고 있는 사람’, ‘쌓여있는 도자기들’, ‘탕후루를 들고 있는 사람’과 ‘머리에 도자기를 올려놓고 있는 사람’, ‘칼로 무를 베는 사는 사람’과 ‘새 머리를 하고 케이크를 들고 있는 사람’. ‘망치와 정으로 새 머리를 조각하는 손’, ‘사과들’, ‘수영장 레일’과 ‘생선 뼈가 보이는 간판’ 같은 것들을 발견한다. 여기에 ‘자로 뭔가를 측정하는 사람’이나 ‘한 손으로 턱을 받치고 창문 밖을 응시하는 사람’도 추가해야겠다. 물론 아직 미처 언급하지 못한 것들이 남아있다. 이 모두를 전부 열거하려면 꽤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다양한 단편들을 조합하여 조민아가 얻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일단 조민아의 회화에서 어떤 이야기, 또는 서사를 포착하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이 이미지들을 순차적으로 연결하여 서사를 만들어내는 것은 사실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안소연에 따르면 “조민아의 그림은 어떤 형상들로 꽉 차 있는데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적막”하다. 언뜻 보기에 “장황한 서사가 엮여 있을 것 같은데” 정작 “어디에도 서사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서사가 아니라면 대체 조민아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에 답하려면 조민아 회화에 등장하는 개별 이미지들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로 4.5m에 달하는 두루마리 형식의 대작 <Beyond Somewhere>(2020)를 보자. 여기에는 누군가가 겹쳐 쌓은 것들이 다수 등장한다. 돌과 벽돌, 도자기, 과일 등을 쌓아 올려 만든 무더기들이 그것이다. 새들이 나뭇가지를 쌓아 올려 만든 둥지도 있다. 우리가 호텔 로비에서 흔히 만나는 광경, 곧 투숙객의 짐가방을 모아놓은 모습도 보인다. 그런데 이렇게 돌, 벽돌, 도자기, 과일, 가방 같은 것들을 겹쳐 쌓을 때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가? 그것들이 깨지거나 무너져내리지 않도록 균형을 잘 잡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나는 이것이 조민아가 이미지 단편들을 조합하는 방식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작가는 벽돌이나 도자기를 쌓아 올리는 것과 매우 유사한 태도로 개개 이미지들을 조합한다. 즉 특정 서사나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들이 전체 안에서 무너져 내리지 않게끔 잘 쌓아 올리는 식으로 이미지들을 조합한다. 조민아 회화에서 이미지들의 조합을 지탱하는 것은 이야기-서사의 논리가 아니라 사물-이미지들의 역학적, 물리적 관계 같은 것이 아닐까?

호텔 짐보관소의 직원은 짐들의 크기나 형태, 무게 등을 섬세하게 고려하면서 그것들을 하나의 전체 안에 배치한다. 이 경우 가장 중요한 고려 사항은 물론 균형일 것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는 짐 가운데 일부가 빠져나가고 새로운 짐들이 들어올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그는 균형 잡힌 상태를 추구하지만 그 균형은 결코 절대적, 항구적인 균형이 아니라 변화에 열려있는 균형, 잠정적인 균형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조민아는 이미지 단편들의 크기와 형태, 지각적 무게 등을 세심하게 고려하면서 그것들을 화면 안에 배치한다. <Beyond Somewhere>에서 벽돌을 쌓아 만든 공간이 현재 ‘건설 중’인 상태에 있는 것처럼 ‘잠정적인 균형’은 형성 과정 중에 있는 균형이다. 조민아의 애니메이션 작업 <빼기, 더하기, 그리고 다시 더하기>(2020)는 있던 것들이 빠져나가고 새로운 것이 들어오는 상황에서 단편들의 역학적, 물리적 균형이 흔들리고 깨졌다가 다시 복원되는 상태를 상연한다.

그런데 지금 조민아가 추구하는 잠정적인 균형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잠시 이 작가의 초기작으로 돌아가 보기로 하자. 이 작가는 《숙련과 No.How》(2015) 《숙련과 노하우》(2016) 등 초기 전시에 발표한 작품들에서 서커스 풍경, 곧 불안정한 조건 속에서 미끄러지거나 떨어지지 않고 균형을 잡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형상화했다. 이러한 작업 경향은 이른바 '자재화된 인간'의 목적을 잃은 노동의 모습을 문제 삼은 《오늘의 기약》展(2017)으로 이어졌다. 당시 조민아는 자기 의지에 따라서 살지 못하고 주어진 외부적 조건에 반응하여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을 자신의 화폭에 담았다. 《숙련과 No.How》展에서 유사-선언문의 형태로 발표한 텍스트에서 이 작가는 “위험에 대비하여 최소한의 반경 내에서 움직이고 자신이 쥐고 있는 여러 책임에 대한 균형을 유지한다”고 썼다. 이 텍스트에서 “미끄러지거나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 몸에 감각을 자동적으로 습득한다”는 구절은 특히 인상적이다. 2015년에서 2017년 사이에 조민아가 쓴 작가노트를 읽어보면 이 작가는 당시 자신의 회화를 이른바 ‘갑을(지배-종속) 관계’의 수준에서 이해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갑이 정한 규칙이나 틀에 어떻게든 자신을 끼워 맞춰 살아남고자 몸부림치는 을의 모습, 또는 억압적 틀을 벗어나고자 노력하지만 결국 거기서 벗어날 수 없는 을의 비극적 숙명을 다루고 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의도와는 달리 이 작가의 초기작품에서는 좀처럼 비극적 정서를 체감할 수 없다. 오히려 이 작품 앞에서 나는 어떤 차분함, 냉랭함을 느낀다. 앞서 인용한 글에서 안소연이 언급한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적막한” 느낌이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런 효과는 왜 발생하는가?

2015년 이후의 초기 작업에서 조민아가 ‘노하우’나 ‘숙련’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 주목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반복을 통한 노하우의 습득, 즉 숙련 과정은 낯선 것, 이질적인 것들에 적응하는 과정, 그것들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노하우를 지닌 사람은 좀처럼 긴장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확실히 반복은 의미있는 것들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효과, 낯선 것을 익숙한 것으로 만드는 힘이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조민아의 초기 작업은 지배-종속 관계를 반영하는 작품이라기보다는 지배-종속 관계에 내포된 긴장이나 갈등의 극복, 해소를 지향한 작업이었다고 말하는 편이 적절하지 않을까? 실제로 어느 시점부터 이 작가는 긴장과 갈등이 해소된 평정 상태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무료한 때>(2018)나 <낙원에서>(2018)에서와 같은 작품을 선보인 2018년 개인전 《소란스러운 적막》을 변화의 기점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2018년 이후의 근작들에서 조민아는 ‘비껴진 자리(detached position)’로 이동하여 반복과 순환을 통해 모종의 틀이나 시스템, 루틴(routine)이 만들어지고 무너졌다가 다시 만들어지는 과정을 형상화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틀과 시스템, 루틴은 연약하기 짝이 없는 것이기에 외부에서 이질적인 것이 유입되면 금방 위태로운 상태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관리자는 그것을 끊임없이 <굽어보고, 돌아보고>(2020) 해야 한다. 근작들에 등장하는 관찰자의 이미지, 이를테면 계량기를 바라보는 사람이나 측정하는 사람의 이미지를 눈여겨보아야 한다. 또한 깨지고 터진 것들, 삐져나온 것들과 흘러내리는 것들을 수습하는 행위들을 주목할 수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가치는 ‘파괴’나 ‘탈주’가 아니라 ‘적응’ ‘유지’, ‘지속’이다.

조민아의 근작들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에 조민아의 회화는 부정과 탈주가 아니라 현상 유지와 적응이 훨씬 중요해진 사회적 조건 변화에 대한 예술적 반응이다. 이 작품들은 내게 크고 작은 일렁임과 파동의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그때그때의 상황변화에 적절히 대처하는 삶의 태도를 환기한다. 최근 진행한 나와의 인터뷰에서 이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소위 코로나 사태 이후 위축된 개인의 조건에 비유했다. 그것은 “그때그때의 상황에 대처하다 보니 구축된 느슨한 전체”라는 것이다. 그 느슨한 전체는 내게 깊은 감동을 불러일으키기보다는 미묘한 감정의 일렁임을 선사한다. 그 일렁임은 특정 개념으로 좀처럼 포착하기 어려운 정동인데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애틋함’이 가장 근사할 것이다.

 

1) 안소연, 「그림 아래 가둔 현실의 요란함」, 《소란스러운 적막》展(OCI미술관, 2018) 서문. 황정인은 「불안과 체념에 관한 회화적 소고」(2018)에서 조민아의  커다란 화면과 연작 안에서 “도식화된 이미지들이 명확한  연결고리 없이 상징같이 제시된 사물, 혹은 반복된 상황  안에 서사의 흐름을 불완전하게 갖춰나갈 뿐”이라고 서술했다. 
2) 2020년 금호미술관에서 열린 이 작가의 개인전 제목은  ‘빼기, 나누기, 그리고 다시 더하기’였다.
3) ‘비껴진 자리에서’는 2019년 인스턴트루프에서 열린 이 작가의 개인전 제목이다.

Recent Works of CHO Minah: Loose, Flexible, Fonding Whole

Hong Jisuk (Art Critic, Visiting Professor at Dangook University

The paintings of CHO Minah are characterized by the superposition of various and complex motifs. 
The most unique characteristic of her paintings is how different fragments are combined to create a whole. In 〈Mixed World〉(2020), there are many image fragments mixed. For example, I found things like ‘a person baking pottery’, ‘stacked pottery’, ‘someone holding a tanghulu’, ‘a person with pottery on their head’, ‘a person who cuts a radish with a knife’, ‘a person with a bird head holding a cake’, ‘a hand carving bird head with hammer and chisel’, ‘apples’, ‘pool rails’, and ‘signboard with fishbones’. To this, 'a person measuring something with a ruler’ and ‘a person looking out the window with his hand on his chin’ needs to be added. Of course, there are still things that I haven’t mentioned yet. It will take quite some time to enumerate all of them.
But what does CHO Minah want to achieve by combining these various fragments? First, I must point out that it is very difficult to capture a story or narrative in CHO Minah’s paintings. In fact, it is almost impossible to create a narrative by connecting these images in sequence. According to Ahn Soyeon, “CHO Minah’s painting is fully filled with certain figures but yet it is so silent that no sound can be heard”. At first, it seems like “there is a long narrative”, but “there is no narrative anywhere”. 1) But what would CHO Minah want if it is not a narrative? To answer this, we need to take a closer look at the individual images that appear in CHO Minah’s paintings.
Let's take a look at the masterpiece 〈Beyond Somewhere〉(2020) in the form of a scroll measuring 4.5 meters wide. Several things that someone stacked together appear here. There are piles of stones, bricks, pottery, and fruits. There is also a nest made by birds stacking branches. A collection of customer's bags, the sight we often see in the hotel lobby, is also seen. But what should be considered when stacking stones, bricks, pottery, fruits, and bags? It will be most important to balance them well so that they won’t break or collapse. I don’t think this is not related to the way CHO Minah combines image fragments. This artist combines individual images with an attitude very similar to stacking bricks or pottery. In other words, images are combined and stacked in a way that they will not collapse within the whole and not combined to develop specific 
narratives or stories. I believe it is not the story- narrative logic that supports the combination of images in CHO Minah’s painting but the mechanical and physical relationship between objects-images.
The staff of the hotel luggage storage carefully considers the size, shape, and weight of the luggage and places them in one whole. In this case, of course, the most important thing to consider would be balancing, but that is not everything. The possibility of some of the luggage leaving and new luggage coming in should also be considered. A balanced state is pursued, but that balance will never be absolute or permanent. It would be a balance open for change, a tentative balance. Likewise, CHO Minah places the image fragments on the screen carefully considering their size, shape, and perceptual weight. Just as the space made with bricks in 〈Beyond Somewhere〉is currently under construction, ‘tentative balance’ is a balance in the process of forming. CHO Minah’s animation work 〈Subtracting, Adding, and Adding Again〉(2020) portrays a state in which the mechanical and physical balance of the short stories is shaken, broken, and restored again in a situation where what was already there are going out and new things come in. 2) But what is the tentative balance CHO Minah pursues now? Let’s go back to the author’s early work for a moment. In her works published in early exhibitions, such as 《Skills and No.How》 (2015) and 《Skills and Knowhow》(2016), the artist embodies people who try hard to balance without slipping or falling under unstable conditions like a circus. This trend in work led to the Exhibition 《Pledge of Today》(2017), which considered the appearance of labor that lost the purpose of so-called “materialized human beings” as the problem. 
At that time, CHO Minah captured the images of humans living day by day in response to the given external conditions without living according to their own will. In a text published in the form of a similar-declaration in 《Skills and No.How》, the author wrote, “move within a minimum radius in preparation for danger and maintain a balance of the various responsibilities you hold”. In this text, the phrase in order “not to slip or fall” you “automatically acquire sense into the body through repeated practice” is particularly impressive. If you read the Artist Statement written by CHO Minah between 2015 and 2017, it seems that the artist understood her paintings at the level of the so-called “Gab-Eul relationship(甲乙 Dominant-subordinate)”. She was dealing with the tragic fate of Eul (乙), 
who tries to escape the oppressive framework but couldn’t, or how Eul struggles to somehow survive in line with the rules or framework set by Gab (甲). However, unlike these intentions, you can hardly feel the tragic emotions in the artist’s early works. I rather felt a certain calmness and coolness in front of her works. Like a phrase in the previously cited Ahn Soyeon’s article,  “so silent that no sound can be heard” will not be different. Why does this effect occur?
It can be noted that CHO Minah put “know-how” or “skilled” at the forefront of the initial work after 2015. As is well known, the acquisition of know-
how through repetition is the process of adapting to unfamiliar things, heterogeneous things, and the process of securing the ability to control them. People with know-how rarely get nervous or afraid. Certainly, repetition has the effect of making influential things uninfluential, and the power to make unfamiliar things familiar. From this point of view, wouldn’t it be more appropriate to say that CHO Minah’s early works were aiming to overcome and resolve tension or conflict implied in the dominant-subordinate relationship than a work reflecting the dominant- subordinate relationship? In fact, at some point, it seems that the writer began to pay attention to the state of calmness with tension and conflict resolved. Perhaps the 2018 solo exhibitions 《Defeaning Silence》 which presented the same works as in 〈Bored at the Time〉(2018) or 〈In Paradise〉(2018), can be used as the turning point for change.
In recent works since 2018, CHO Minah’s moved to a “detached position” 3) and embodies the process of creating, collapsing, and re-creating framework, system, and routine through repetition and circulation. Of course, these frameworks, systems, and routines are vulnerable, so when heterogeneous things flow in from the outside, they quickly fall into a precarious state. Therefore, the manager must constantly 〈Look down, Look back〉(2020). You should pay attention to the observer that appears 
in recent works, such as the person looking at the meter or the person measuring it. It is also possible to pay attention to the actions dealing with broken and burst things, things sticking out, things flowing down. The significant value here are not ‘destruction’ or ‘escape’ but ‘adapting’, ‘maintaining’, and ‘lasting’.
How can we evaluate CHO Minah’s recent works? In my view, CHO Minah’s painting is not a denial and escape, but an artistic reaction to the changes in social conditions where maintenance and adaptation of the status quo have become much more important. These works evoke an attitude in life that responds sensitively to changes in large and small fluctuations and waves and responds appropriately to changes in the situation. In a recent interview with me, this artist compared her work to the conditions of individuals that went from bad to worse since the so-called Corona crisis. It is ”a loose whole created by coping with the situation of the time.“ The loose whole gives me a subtle shimmering of emotions rather than a deep impression. This shimmering is a certain concept, which is difficult to capture, but if I dare to name it, ‘fondness’ would be the most appropriate. 

1) Ahn Soyeon, 「Locked within Images: The Loudness of  Reality」, 《Defeaning Silence》展(OCI Museum of Art, 2018)   Preface. Hwang Jungin described CHO Minah’s large  screen and series of paintings in 「A Painterly View towards     Anxiety and Resignation」(2018) that “Schematic images  only incompletely equip the flow of narrative in symbolic objects or repeated situations without a clear link”.
2) The title of the solo exhibition which was held in Kumho  Museum of Art in 2020 was ‘Subtraction, Division, and Addition Again’
3) ‘In a Detached Position’ is the title of the artist’s solo exhibition held at Instant Roof.

 

 

 

 

 

 

 

 

 

 

 

 

 

 

 

 

 

 

 

 

 

 

 

 

 

 

에서 이미지들의 조합을 지탱하는 것은 이야기-서사의 논리가 아니라 사물-이미지들의 역학적, 물리적 관계 같은 것이 아닐까?

호텔 짐보관소의 직원은 짐들의 크기나 형태, 무게 등을 섬세하게 고려하면서 그것들을 하나의 전체 안에 배치한다. 이 경우 가장 중요한 고려 사항은 물론 균형일 것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는 짐 가운데 일부가 빠져나가고 새로운 짐들이 들어올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그는 균형 잡힌 상태를 추구하지만 그 균형은 결코 절대적, 항구적인 균형이 아니라 변화에 열려있는 균형, 잠정적인 균형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조민아는 이미지 단편들의 크기와 형태, 지각적 무게 등을 세심하게 고려하면서 그것들을 화면 안에 배치한다. <Beyond Somewhere>에서 벽돌을 쌓아 만든 공간이 현재 ‘건설 중’인 상태에 있는 것처럼 ‘잠정적인 균형’은 형성 과정 중에 있는 균형이다. 조민아의 애니메이션 작업 <빼기, 더하기, 그리고 다시 더하기>(2020)는 있던 것들이 빠져나가고 새로운 것이 들어오는 상황에서 단편들의 역학적, 물리적 균형이 흔들리고 깨졌다가 다시 복원되는 상태를 상연한다.

그런데 지금 조민아가 추구하는 잠정적인 균형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잠시 이 작가의 초기작으로 돌아가 보기로 하자. 이 작가는 《숙련과 No.How》(2015) 《숙련과 노하우》(2016) 등 초기 전시에 발표한 작품들에서 서커스 풍경, 곧 불안정한 조건 속에서 미끄러지거나 떨어지지 않고 균형을 잡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형상화했다. 이러한 작업 경향은 이른바 '자재화된 인간'의 목적을 잃은 노동의 모습을 문제 삼은 《오늘의 기약》展(2017)으로 이어졌다. 당시 조민아는 자기 의지에 따라서 살지 못하고 주어진 외부적 조건에 반응하여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을 자신의 화폭에 담았다. 《숙련과 No.How》展에서 유사-선언문의 형태로 발표한 텍스트에서 이 작가는 “위험에 대비하여 최소한의 반경 내에서 움직이고 자신이 쥐고 있는 여러 책임에 대한 균형을 유지한다”고 썼다. 이 텍스트에서 “미끄러지거나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 몸에 감각을 자동적으로 습득한다”는 구절은 특히 인상적이다. 2015년에서 2017년 사이에 조민아가 쓴 작가노트를 읽어보면 이 작가는 당시 자신의 회화를 이른바 ‘갑을(지배-종속) 관계’의 수준에서 이해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갑이 정한 규칙이나 틀에 어떻게든 자신을 끼워 맞춰 살아남고자 몸부림치는 을의 모습, 또는 억압적 틀을 벗어나고자 노력하지만 결국 거기서 벗어날 수 없는 을의 비극적 숙명을 다루고 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의도와는 달리 이 작가의 초기작품에서는 좀처럼 비극적 정서를 체감할 수 없다. 오히려 이 작품 앞에서 나는 어떤 차분함, 냉랭함을 느낀다. 앞서 인용한 글에서 안소연이 언급한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적막한” 느낌이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런 효과는 왜 발생하는가?

2015년 이후의 초기 작업에서 조민아가 ‘노하우’나 ‘숙련’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 주목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반복을 통한 노하우의 습득, 즉 숙련 과정은 낯선 것, 이질적인 것들에 적응하는 과정, 그것들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노하우를 지닌 사람은 좀처럼 긴장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확실히 반복은 의미있는 것들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효과, 낯선 것을 익숙한 것으로 만드는 힘이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조민아의 초기 작업은 지배-종속 관계를 반영하는 작품이라기보다는 지배-종속 관계에 내포된 긴장이나 갈등의 극복, 해소를 지향한 작업이었다고 말하는 편이 적절하지 않을까? 실제로 어느 시점부터 이 작가는 긴장과 갈등이 해소된 평정 상태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무료한 때>(2018)나 <낙원에서>(2018)에서와 같은 작품을 선보인 2018년 개인전 《소란스러운 적막》을 변화의 기점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2018년 이후의 근작들에서 조민아는 ‘비껴진 자리(detached position)’로 이동하여 반복과 순환을 통해 모종의 틀이나 시스템, 루틴(routine)이 만들어지고 무너졌다가 다시 만들어지는 과정을 형상화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틀과 시스템, 루틴은 연약하기 짝이 없는 것이기에 외부에서 이질적인 것이 유입되면 금방 위태로운 상태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관리자는 그것을 끊임없이 <굽어보고, 돌아보고>(2020) 해야 한다. 근작들에 등장하는 관찰자의 이미지, 이를테면 계량기를 바라보는 사람이나 측정하는 사람의 이미지를 눈여겨보아야 한다. 또한 깨지고 터진 것들, 삐져나온 것들과 흘러내리는 것들을 수습하는 행위들을 주목할 수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가치는 ‘파괴’나 ‘탈주’가 아니라 ‘적응’ ‘유지’, ‘지속’이다.

조민아의 근작들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에 조민아의 회화는 부정과 탈주가 아니라 현상 유지와 적응이 훨씬 중요해진 사회적 조건 변화에 대한 예술적 반응이다. 이 작품들은 내게 크고 작은 일렁임과 파동의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그때그때의 상황변화에 적절히 대처하는 삶의 태도를 환기한다. 최근 진행한 나와의 인터뷰에서 이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소위 코로나 사태 이후 위축된 개인의 조건에 비유했다. 그것은 “그때그때의 상황에 대처하다 보니 구축된 느슨한 전체”라는 것이다. 그 느슨한 전체는 내게 깊은 감동을 불러일으키기보다는 미묘한 감정의 일렁임을 선사한다. 그 일렁임은 특정 개념으로 좀처럼 포착하기 어려운 정동인데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애틋함’이 가장 근사할 것이다.

 

홍지석(미술비평, 단국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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