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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련과 No. How(2015): 모두 안녕한가요?

Skills and No. How (2015) : How is everybody doing?

박기현 / 독립 큐레이터, 인스턴트루프 디렉터

Kihyun Park / Independent curator, Instant roof director

 

 
춥지 않은 겨울이라고 했지만 전시장이 위치한 석수시장은 을씨년스 러웠다. 시장 입구에서부터 5분여 남짓을 걸어가는 동안 아무도 보지 못했다. 무심코 지나칠뻔한 낡은 모퉁이 건물에서 조민아의 개인전이 열리는 갤러리가 있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눈에 띈, 흰 커튼에 쓰인 글을 읽어 내 려갔다. 글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차분했다. 조민아 작가가 쓴 이 글 은 일종의 처세술처럼 보였다. 마치 사회에서 그 어느 쪽으로도 치우 치지 않고 주어진 현실에 맞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 나가는, 중용(中 庸)의 기예(技藝)라 해도 과함이 없는 글이었다. 그의 말마따나 넉넉하 지 않은 삶은 여러 관계 속 ‘견제와 균형’의 법칙을 따라야 한다. 특히 아르바이트 혹은 비정규직 같은 지속적인 관계를 허락하지 않는 곳에 서는 더욱 그렇다. 몇 개월, 짧게는 며칠, 몇 시간 동안 함께 일을 하면 서 느끼는 불안정함은 개인의 균형 잡기로나마 잠시 상쇄된다. 그날의 감정에 따르다 보면 일어날 수 있는 수행의 불규칙성과 궤도를 벗어나 는 일탈의 여지는 일찌감치 제거되어야 한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수 많은 아르바이트와 그날그날 일터에서 만나는 낯선 동료들과의 관계 속에서 체득한 노하우라면 노하우일 것이다. 미대를 졸업하고 작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느꼈을 작가의 고충 은 문뜩 ‘다른 사람들은 안녕한가?’라는 질문으로 확장된다. 이번 전 시는 이 질문에 대답한, 갓 서른이 된 안양 젊은이 5명을 만나고 인터 뷰한 이야기를 엮은 책과 이후 작가가 작업한 그림들로 구성되었다. 작가의 글이 쓰인 커튼 오른편에는 총 24개의 드로잉이 한 덩어리로 설치되어 있었다. 인터뷰집에 삽화처럼 들어있는 이 그림들은 접시 돌
리기, 공중그네에 매달리기, 공 위에서 균형 잡기, 외발자전거 타기와 같은 서커스 공연의 기예들을 표현하고 있다. 5개의 인터뷰 속 5인의 구술자들이 어쩌면 이 그림 안에 한 명씩 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사회를 개인이 재주를 부리는 서커스장으로 바라본 작품은 우화 같은 화면 속 이야기 전개와 함께 흡인력이 있었다. 배경 이 생략되고 동작을 수행하는 몸과 사물 들의 부분들이 확대된 드로 잉 연작은 마치 언젠가 내가 경험했던 기억의 한 부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화면 속 인물과 불특정 감상자의 기억이 겹쳐지는 순간, 누구라 도 먹먹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 그림을 한동안 들여다 보았다. 내가 느낀 이 먹먹함은 조민아가 엮은 인터뷰집을 지배하는 감정이기 도 했다. 인터뷰 집에는 개츠비라는 아이디의 청년이 이야기한 것처럼 ‘희망도 절망도 가지지 않는’ 상태 즉 영도(零度)의 상태에 갇힌 청년 들의 이야기가 덤덤히 기록되어 있다. 그러고 보면 우석훈의 『88만 원 세대』가 출판된 지 어느덧 8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높은 청년 실업률과 최저 임금의 증가 폭은 변한 것이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정규직도, 안 정된 수입도 갖기 힘든 세대에게 ‘노력하라’라는 말은 격려가 아닌 비 아냥 같은 말로 들린다. 우리 사회는 ‘자녀의 취업은 묻지 않는 게 예의 다’라는 씁쓸한 농담으로 애써 현실을 외면하거나 ‘삼포세대’, ‘달관세 대’라는 약간은 흘러간 유머 같은 애칭으로 더는 이 문제들을 거론하지 않기로 한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물론 청년들을 향해 기성세대는 ‘ 저항하라’라는 조언을 혹은 아픈 만큼 성장할 것이라는 위로의 메세지 를 전한다. 나는 기성세대에게 묻고 싶다.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양극화와 갑질이 만연한 노동 현장이 과연 한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될 수 있는 것인지 말이다. 더욱 공고해진 자본의 결탁 아래 꿈, 장래희망 은 어떤 의미에서 과거보다 더 낭만적인 것이 되어 버린, 사회적 연대감보다는 개인의 탁월함에 더 기댈 수밖에 없는 이 시대를 견뎌내고 있 는 청년세대들의 고통에 기성세대가 젊음을 시기하지 않고 얼마나 동 감할 수 있는지 진심으로 묻고 싶다. 한편 나는 조민아의 전시가 열린 장소를 통해 청년 작가들이 동시대 미 술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전략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았다. 거슬 러 올라가면 미술계에의 판을 뒤엎는 일탈은 단지 ‘예술적인’ 이유로만 발생하지 않는다. 19세기 말, 아카데미 회원들의 엄격한 심사를 통해 선정된 작가들만이 참가할 수 있었던 ‘프랑스 작가 전람회 Salon des Artists Français’ 에 대한 진보적 예술 집단의 거부로 그 동기가 단순 화되는 ‘독립작가 전람회(Salon des Indéndants, 앙데팡당전)의 이 면에는 당시 프랑스 전역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한 군소 아카데미가 배 출해 낸 작가들을 기존의 미술 시장 시스템에서 소화할 수 없었던 상 황도 있었다. 아카데미 졸업과 함께 살롱전으로 등단한 뒤 귀족, 부르 주아 그리고 정부기관의 초상화 혹은 역사화 주문을 받아 생활했던 19 세기 이전의 작가들은 당시 고소득 자영업에 속하는 직업이었다. ‘가 난하고’, ‘불행한’ 예술가란 가난하고 불행한 여타 직종과 다를 바 없는 운명의 잔혹함이었고, 낭만주의와 함께 불행한 예술가의 신화가 사람 들의 상상력을 자극했을 뿐이다. 그러나 미술 시장의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깨지고, 회화를 위협하는 사진 기술이 등장하면서 예술가들 역 시 치열한 경쟁에 내몰리게 되었다. 살아있는 동안 미술 시장에서 소 외되었던 작가들의 작품이 화상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고, 심지어 그 작가가 ‘시대를 앞서간 천재’였기 때문에 ‘재발견돼야만 한다’와 같은 미술 제도의 수사는 아카데미 시스템을 빠르게 대체했다. 예술가라는 직업이 불운의 천재의 영역 같은 전설에 함몰되어 감에 따라 ‘가난한 예술가의 신화’는 미술 시장에서 화상과 비평가들에 의해 작가의 사후 작품가격을 상승시키는 요소가 되었다. 예술가라는 직업에서 ‘경제활 동’의 요소가 제거된 순간, 예술가는 ‘현실에 타협한 시장 예술가’ 혹은 ‘사후의 영광을 위해 현재의 고통을 감내하는 예술가’ 두 개의 선택지 만을 갖게 되었다. 마치 오늘날 노동시장의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깨지 면서 ‘무급인턴’ 혹은 ‘열정페이’와 같이 노동의 대가가 점점 더 나은 내 일을 위한 스펙을 갖추기 위한 상징가치로 혹은 기약 없는 성공을 위한 희생으로 대체된 것처럼 말이다. 이와 같은 시스템 속에서 점점 소진되 고 있는 것은 청년들이나 예술가나 마찬가지다. 일반 노동시장보다 앞서 ‘자유롭고 유연한 노동’으로 변질된 신자유주 의 시대 예술의 저항 방식은 그런 의미에서 들여다 볼 가치가 있다. 아 카데미가 붕괴되는 19세기를 거쳐 20세기에 들어서면 예술 작품의 공 적 가치에 대한 판단은 미술관이, 시장의 가치는 상업화랑이 결정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러므로 20세기 예술가들의 저항 대상은 미술관 과 상업 화랑이 되었다. 전시는 빠르게 미술계 밖의 공간으로 침투했 고, 물리적 공간을 넘어 지역민과 가상의 네트워크, 공동체까지도 예
술 활동의 영역이 되었다. 마치 순례자와 같이 지역 공동체, 국내외 레 지던시, 비엔날레를 거쳐 완성되는 예술가의 경력은 단지 약간의 참가 비를 내고 전시에 참가했던 19세기 앙데팡당전과는 비교가 어려워진 저항방식이 된다. (심지어 대부분의 이와 같은 저항의 공간들은 화랑, 미술기관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곳이다.) 물론 차선은 있다. 재개발을 기다리는 도심의 낡은 빌딩에서 젊은 작가 들은 ‘한시적’인 공동체를 조직해 자신들의 활동을 SNS로 올리고 빠 르게 소진되는 전시를 통해 미술계의 시선을 끌어 모은 뒤 다음 스테 이지로 이동하는 방식이다. 이제 움직임은 현상에 대처하기 위한 단편 적 행동의 연속성이 되었다. 사회 부조리에 대한 저항적 혹은 전위적인 태도를 취하는 예술은 부담스러운 것이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매우 어 렵게 되었다. 아동과 여성, 성적 소수자 및 노년층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권 감수성을 모든 작가가 반드시 갖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공간들은 대항 공간이 아닌 다음 단계이기 때문에 예술은 이제 제 도권 진입의 장애가 될 수 있는 사회적인 것보다는 개인의 감정, 감흥 혹은 좋아하는 취향에 관한 것이 된다. 과연 이러한 예술로 러시아 아 방가르디스트 마야콥스키의 시구처럼 대중의 취향에 뺨을 때릴 수 있 을는지 모르겠다. 물론 예술이 반드시 대중의 뺨을 때릴 이유는 없다. 최근의 한국의 정치적 상황을 보면 오히려 뺨을 어루만져줘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게다가 다른 장르에 비해 현저하게 대중의 시선 을 빼앗긴 미술이 과연 대중에게 무언가를 가르칠 힘이나 있는지 생 각해 봐야 한다. 위와 같이 위축된 예술의 현실에서 따뜻한 난방과 편의 시설이 갖춰진 안양문화재단의 전시 공간이 아닌 춥고 불편한 곳을 전시장으로 선택 한 뒤, 전시 기간 동안 관람객을 맞이한 조민아 작가의 진정성은 성냥 팔이 소녀의 성냥개비가 아닐지 생각해 본다. 그가 그곳에 있었던 이 유는 직접 ‘모두 안녕한가요?’라고 질문을 던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는 석수시장의 풍경이 고스란히 보이는 전시장 안에서 어떻게 해야 자 신의 그림이 삶의 연장선상에 놓일 수 있을지를 고민했을 것이다. 특 히 재주를 부리는 인물이 그려진 투명 필름을 전시장의 전면 유리창 쪽에 설치하면서 자연스럽게 이 형상들이 행인처럼 보이게 하고 현 실과 회화의 공간이 겹치게 한 것은 전시장 안에서도 효과적인 설치 였다.  이러한 전시의 물질적 구조는 프로젝트 출발점인 ‘동시대를 살 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자신의 작업 주제로 끌어들이고자 한 작 가의 의지를 잘 보여준다. 그래서 어찌 보면 단순한 구술과 복기의 프 로젝트로 그쳤을 이번 전시는 조민아 작가가 놓지 않은 성냥개비 덕 분에 예술의 현실 발언에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촉박한 시간 으로 인해 충분히 몰입하지 못한 두 점의 대형 캔버스 작품이 전시의 긴장감을 떨어뜨린 점이 아쉬웠다. 드로잉과 인터뷰 책자에서 차근차 근 만들어낸 이야기들과 도상들을 온전히 자신의 예술로 만들었어야
만 하는 마지막 단계에서 드러난 이 실수는 인터뷰집의 서문에서 작 가 스스로 고백한 ‘방법은 알지만 혼란스럽고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 를 잡지 못하는 노하우(Know-how)가 아닌 No. How로 전환되는 현 재’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럼에도 ‘숙련과 No. How’는 중요한 메세지를 던진다. 그것은 바로 구술자 개츠비가 인용한 이성복 시인의 시 구절 ‘모두가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 사회에서 ‘아프다’라는 목소리를 내게 했다는 점이다. 오랜 침묵 끝에 가슴에서 이야기가 나올 때는 목소리가 나지 않는다. 고통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앞으로 이 런 목소리들이 청년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점점 한국 사회에 퍼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모두가 아프다는 것을 알았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연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Many said it would be a warm winter, but on the way to the exhibition was pretty chill. From the corner of the street, I’ve seen no soul for more than five minutes. Then I found an old building where CHO Min Ah was holding her solo exhibition. Entering the exhibition, I recognized the texts on the white curtain. It was written in a calm mood. But I thought it was sort of an art of life. It was in fact a textbook example showing a writer’s attempt to stay in the middle, tilting to the left and leaning to the right—proving who she really is through the relations between herself and the world. I agreed that, for the people having no handsome money, it was a check and balance to act on. It became more obvious for people with part-time and contingent jobs. An individual should be able to keep the balance to offset temporary stability that would last for months, for days or probably for hours. There should be no emotional variation to get the job done. Contingent labor force is supposed to acquire this through the experience. “How’s everybody doing?” Cho asked—she had strived to be a full-time artist while working as a part-time worker right after finishing an art school. This exhibition, I believe, which is made of Cho’s paintings and interviews with five individuals in their early 30s, would be the answer to the question. On the right side of the curtain was 24 drawings on a wall.  The two dozens of paintings, eliminating backgrounds, were of unknown men spinning plates, playing a cloud swing, balancing slackwire, riding a unicycle and showing other circus skills. 
It is a compelling allegory comparing a society with a circus. Each of the five interviewees might be able to stand for a clown in the drawings. It also made me feel like a series of drawings were parts of my memories. I had looked into the canvases awhile to find how empathizing the illustrations were. The very same bias is found in the interviews Cho carried out. “We neither despair nor hope,” one of the interviewees whose nickname was Gatsby says, and this is the story of the young generation today. It has been already eight years since publishing A Generation of 880 Dollars. But little has been changed: high unemployment and low minimum wage. We are living in a society where a hard working wouldn’t lead to a success—where some old cliches like “Try hard,” sound like sarcasm. It has become polite not to ask about the jobs of friends’ children. Sampo generation became no longer a neologism. “Resist!” and “The more painful the bigger you will be!” have become typical messages delivering from the old to the young. I would like to ask if the polarization of wealth and omnipresent labor abuse are something that individuals will be able to get over. I would like to ask how much empathy you can feel for the generation who has nothing to depend on to overcome the pariah capitalism. Dreaming of a better future has become a part of a fairy tale. The location of Cho’s exhibition gave me an opportunity to consider the strategy that young artists employ to survive as creators in the fine art scene. Given the history of art, art itself was not the only reason for deviation to turn the table around. In the late 19th century of France, for instance, liberal groups of artists refused Salon des Artistes Francais where The French Academy of Fine Arts (Academie des Beaux-Arts) exclusively judged artists to participate. An unknown side of the story of Salon des Independants , however, was the French fine art market where had already failed to embrace the artists coming from mushroomed minor schools of fine arts in France. Artists practicing before the 19th century were a part of higher-income group, whose clientele involved aristocrats, bourgeois and the government. Just as others in poverty, whereas, almost all the artists were starving.

Romanticism, along with unfortunate artists, became nothing but a legend. The balance between supply and demand was scattered. The invention of photography pushed the creators into the cut-throat competition. Almost all the artists had been neglected from the market until one day some curator found one to say, “He’s a genius,” or “She should be reevaluated.” The academia system was swiftly replaced with such rhetorics. After dying alone, a miserable life of an artist had turned out to be a great catch phrase for the market to raise the price of the pieces. At the moment when people stop seeing art as a making-money job, society started separating into two groups of artists: the creators compromising with the reality and the ones enduring economic hardships to find the glory after death. It is reminiscent of today’s society with the broken labor market of supply and demand forcing college graduates to seek out unpaid internships. Low-paying peanuts jobs had become another phrase symbolizing self-sacrifice for young generation striving to put something into the resume. The same system has been applied for the artists. It should be worthy to look into the resists from the artists living in the age of neoliberalism with flexible labor practice. Entering the 20th century, after the 19th century when the academia-leading fine arts had broken, a system has been fixed in the art field: museums judging artistic values of works and art galleries determining the market prices. So it has become museums and art galleries that artists are against. Artists quickly started to extend the regions into local communities, into the virtual world. Artists’ careers will be built on the experience through local communities, residency programs both in home and abroad—no comparison with Salon des Independants . Young artists have the second best plan. It’s become a career path for young creators to take themselves to the next level by organizing a temporary community at an old building in a redevelopment area, having a short exhibition and posting it on SNS. They are to attract  the mainstream attention. It’s been awful for artists, however, to manifest radical attitude. Or, it’s been outdated to resist against irrationalities of the society, and it’s getting harder to do so. Human rights is not a 
virtue that every artist are supposed to have. Not every artist should have human rights in mind, just as not everyone has to take care of children, women, seniors and LGBTQ. Such space of course doesn’t play a role for itself. But it is to serve as a foothold. Therefore fine arts have excluded social consciousness that can block the artists from getting into the mainstream. Instead, it’s become about feelings, inspirations and some tastes artists are fond of. I don’t know if it will be possible for this type of art would be able to jolt the public notion, just as Vladimir Mayakovsky did with his abstruse poetic words—art is not to jolt the notion, though. Given the politics today, actually, Korea’s public might need some comfort. The mainstream also needs to ponder over if it’s getting enough attention from the public to raise its awareness. Only few follow the art scenes, actually. I appreciate Cho as an artist having an exhibition in such a humble space without appropriate convenient facilities— she’s was waiting for the viewers throughout the exhibition. She decided to stay there to ask her audience, “How’s everybody doing?” Sitting on a chair in a stone-cold building, Cho mulled over how to put her artworks into the line with lives in today’s society. It was truly effective when the artist used a wall of glass to put transparent films with clowns’ postures in a circus. It overlapped with the passerby outside the exhibition. I believe it showed how Cho was striving to employ the voice of contemporains into her artworks. It led this exhibition to be more than simple visual statements. It was shameful to see a couple of big canvas that Cho didn’t have enough time to work on. It loosened the tension of the exhibition. But it would be an example of the mistake of what she said during the interview: “It is like I know where it is. But it was too confusing for me to figure out where to go find it.” As she mentioned, she is on the transition from “no-how” to “know-how.” Still, Skills and No. How delivers a significant message because it points out what poet Lee said in That Day: “Everyone got a disease but no one was sick.” We might be living in a society where everyone is sick. After a long time of silence, it’s hard to find a real voice to speak out to express something coming from the bottom of heart. You may hear no painful scream, but it doesn’t necessarily mean nobody is sick. I hope young artists’ works will be a platform to spread the voices from the voiceless. We should realize there’s voice to be heard. All of us are in need of a real confed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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