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고 부드럽게 놓인 긴장감과 불편함들

글 백지홍 대전신세계갤러리 큐레이터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 위에 놓인 평화라고 해야 할까. 조민아 작가의 작품 세계는 조용하고 부드럽지만, 그 안에는 날카로운 긴장감이 자리하고 있다.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다양한 행동을 하고 있는 인물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이들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점뿐이다. 인물들의 행위는 화면 안에 상황들을 만들어내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일을 하는 이들은 어떤 기분인지 파악할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무표정한 인물들, 부드러움으로 감싸인 날카로운 불안

의미가 불분명한 행동을 하는 인물들은 2015년 첫 개인전부터 현재까지 조민아의 작업에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그의 작업을 본 이들은 ‘변하지 않는 인물과 표정, 상황으로 보였던 교과서 삽화’1)와 유사성이 떠올리기도 하고, ‘의욕이나 하나의 일관된 목표 의식도 찾아볼 수 없다.’2)고 평을 하기도 했다. ‘형상들로 꽉 차 있는데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적막하다’3)는 평가도 퍽 적절하다. 현재의 ‘상황’이 ‘사건’으로 이어지고 말 것만 긴장감 속에도 ‘의미 없는’ 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행위는 조용하게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작품 속 인물들은 때로는 상호작용하지만, 많은 경우 한 화면 안의 다른 인물에게 영향을 주지 못하는 듯 보인다. 함께 존재함에도 고립된 이들은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는지조차 불투명하다. 행동은 뜨겁기보다는 차갑고, 인물과 인물, 상황과 상황은 적절한 거리를 두고 배치되어 있기에 서로 충돌할 일 역시 없어 보인다. 디테일이나 명암을 강조하지 않은 인물 표현의 평면성이나, 종이 위로 조금은 푹신할 것처럼 스며든 분채의 질감, 그리고 중간색 위주의 채색까지, 작품의 첫인상은 날카롭기보다는 부드럽고 조용하다.

그런데, 이 조용함은 소란스러움 위에 흡음재를 덮은 먹먹함임이 금세 밝혀진다. 부드러움은 긴장을 자아내는 요소 위에 살짝 얹혀 있을 뿐이었다. 먼저, ‘정체불명’이 주는 긴장감이다. 감상자는 그림에 등장한 인물과 사물의 의미를 찾고자 하지만, 작가는 그 의미를 말해주지 않는다. 감상자는 자신의 해석이 작품에 다가가지 못하고 미끄러지는 것은 아닌지 계속해서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미끄러짐은 작가에 의해 의도된다. 내용물이 그려진 타로카드나, 특정 종류의 식물, 동물처럼 분명한 의미를 품고 있을 것처럼 보이는 사물들이 작품에 등장하지만, 이중 어디까지가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연관되어 있는지, 혹은 단순히 시각적 요소로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알 방법은 없다.

부드럽게 그려진 대상들도 날카로움을 숨기고 있는 경우가 많다. 깨진 유리 조각,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 등 평화를 깨기에 충분한 요소들이 화면 곳곳에 뜬금없으면서도 매끄럽게 녹아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자리한 곳 역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등장인물과 사물들은 균형 있게 배치된 듯 보이지만, 그들이 자리한 화면의 투시가 항상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그려진 대상들이 화면 밖으로 쏟아져 내릴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거기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적록 보색 대비까지. 작품을 살펴볼수록 작품 구석구석까지 스며있는 긴장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버티며 생존하기, 헬조선부터 현재까지

고통은 분명하나, 그 원인은 흐릿하고, 일단 버티는 것 외에 해결책은 보이지 않을 때, 체념으로 해소되지 않는 불만이 조금씩 쌓여간다. 조민아 작가의 작품에서 드러난 부드러움으로 감싸진 날카로운 긴장감은 작가 자신이 마주한 사회를 담아내면서 포착된 것이다. 그렇기에 큰 틀의 유사성 속에서도 작품은 변화해왔다. 첫 개인전으로부터 7년의 세월 동안 사회와 사회를 바라보는 작가 모두 변화했으니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30살이 되던 해에 선보인 첫 전시 《숙련과 No. How》(2015)는 작가노트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불안과 위험’의 정서가 중심에 있다. 이는 조민아 작가만의 것은 아니다. ‘88만 원 세대’로 불리다가 이른바 ‘헬조선’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80년대생 작가들이 표현한 청춘을 관통하는 정서가 바로 불안과 체념이기 때문이다. 지난 전시의 제목을 살짝 바꾼 《숙련과 노하우》(2016)는 ’일시적인 관계의 균형‘. ’의도적인 회피‘와 같은 하루하루를 버텨가는 노하우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숙련과 노하우》에서 전시와 동명의 5m 길이의 작품 〈숙련과 노하우〉가 등장한다. 길게 이어진 화면에 담긴 행위들은 유기적이기보다는 파편화되어있었지만, 시각적으로는 다양한 사건들이 거대한 서사를 이루는 기록화나 종교화와 같은 느낌을 자아냈다. 화폭은 점차 크기를 키워 《오늘의 기약》(2017)에서는 가로 3m의 작업으로 ’노동의 가치 하락‘이라는 오늘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냈고, 《소란스러운 적막》(2018)에 이르러서는 130×775cm라는 거대한 크기로 확대되었다. 이러한 스케일은 작가의 작업이 한 시대를 담아낸 기록화라는 상징적 성격을 강화했다.

《비껴진 자리에서》(2019)는 공간 규모에 맞게 상대적으로 작은 작품들을 선보였는데, 작품에 등장한 비둘기는 앞으로의 변화를 예고했다. 그동안 다뤄왔던 불평등과 같은 문제가 소수의 결정권자가 아닌 사회의 구조에서 기인한다는 점에 주목하여, 구조 속에서 더욱 고통받는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철망에 갇힌 비둘기를 통해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2020년에서 2021년에 걸쳐 개최된 《빼기, 나누기 그리고 다시 더하기》와 《흩어진 나날》은 조민아 작가의 작품세계가 본격적으로 ‘다음 단계’로 이행하기 시작한 전시다.

‘줌-인’이라 부를 수 있는 작품세계의 변화는 크게 두 가지 요소가 원인이 된듯하다. 첫째는 2019년 대만 가오슝의 레지던시에서 활동하고 《부분 혹은 전부》를 개최한 경험이다. 현지 작가들과의 대화에서 공감하는 영역만큼 외지인으로서 공감이 힘든 영역이 있음을 체감하고 ‘일반론’의 한계를 느낀 것이다. 갈등 상황은 우리를 이분법으로 몰고 가지만,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려면 보다 자세히 살펴봐야만 한다. 2020년 《빼기, 나누기 그리고 다시 더하기》의 시야는 상황에 따라 분열, 배제, 연대하는 구체적 사회에 대한 관찰로 좁혀 들어갔다.

2021년 개최된 《흩어진 나날》은 줌-인된 주제 의식에 맞추어 형식적인 면에서도 화면이 작아지는 변화를 보였다. 한 작품의 등장인물 수가 줄어드는 대신, 개별 인물의 밀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 하는 외부 상황이 변화를 앞당겼다. 질병이 불러온 죽음과 고통만큼이나 일상을 변화시킨 것은 전염 속도를 낮추기 위해 감내해야 했던 거리두기이다. 이 흩어진 사회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었고, 활동반경은 좁아졌다. 미시적 영역으로 관심사가 이동하던 작가의 작품세계가 변화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2022년, 그 너머

조민아 작가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작품을 제작하는 동안에는 무엇에 영향을 받아 어떤 변화를 만들어 나가는지 불분명하지만, 전시를 통해 작품들을 돌아보고, 정리하면서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해왔는지 명확해진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글을 쓰는 현재는 아직 작가의 작업이 하나로 매듭지어지기 전의 과도기라 할 수 있다. 특히 《흩어진 나날》이 올해 초까지 개최되었기에, 현재 작업은 《흩어진 나날》의 연장선에서 살펴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형식적인 면에서는 앞서 말한 대로, 화면의 크기가 작아지면서 개별 인물과 사물의 밀도가 높아진 변화가 가장 눈에 띈다. 2m를 오가는 작품들은 결코 작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나, 가로 6~8m에 달하던 거대한 작품들과 달리 감상자가 압도당하지 않고 감상할 수 있는 크기다. 감상자가 보다 꼼꼼히 작품을 살펴볼 수 있는 만큼 작가 역시 디테일에 더욱 많은 노력을 들일 수 있게 되었다. 내용적인 면에서는 인물들의 행동에 추상성이 증가했다. 노동 가치 하락과 같은 명확한 문제를 말하던 시기의 인물들은 ‘노동’임이 분명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보다 미시적인 문제를 품고 있는 행동들은 불분명성이 커졌다. 더욱 선명하게 불투명해진 행위들은 해석의 미끄러짐으로 인해 생기는 긴장감을 다시 강조한다.

그리고 여성성의 등장은 거대 담론에서 작가와 주변의 이야기로의 이행을 상징하는 요소라 할 수 있다. 그동안 조민아 작가의 작품에서 불분명했던 요소 중 하나는 등장인물의 성별이었다. ‘익명의 개인’을 상징하듯 중성처럼 보였던 인물들이 근작들에서는 명확하게 여성의 형상을 한 경우가 많아졌다. 이는 사회적 거리두기 상황에서 작가의 피부에 와 닿는 문제들을 더욱 진솔하게 화면으로 옮기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 규모가 줄어들어 작품과 감상자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 진만큼, 작품과 작가 사이의 거리도 가까워진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작가의 관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88만 원 세대, N포 세대 등 청춘 모두에게 공통적인 일반론은 2022년 현재 통용되지 않는 담론이 되었다. 《흩어진 나날》이 종료된 1월과 글을 작성하는 5월의 중간쯤인 3월 9일 진행된 제20대 대통령선거는 ‘청년’이라 불리는 세대 내부에 선명한 차이가 존재함을 보여주었다. 20대와 30대의 정치, 사회적 견해에 차이가 존재함은 물론이고, 2030 여성과 남성의 관점 차이는 더욱 컸다. 적어도 정치에 관해서는 또래 이성보다 다른 세대의 동성이 오히려 잘 통하는 상황임이 전수조사를 통해 드러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체를 아우르려는 시야는 의미 있는 결과물을 가져오기 힘들지도 모른다.

물론 다시 전체를 바라보고, 그것을 대형 화면에 옮기는 일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힘든 청춘과 힘들게 만드는 사회라는 시야 너머, 복잡다단하고 첨예하게 나누어진 갈등 지점들을 살펴보고 그것을 하나의 화면으로 묶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가 바로 그렇게 만들어져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쉽게 공감하고 작품으로 보다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작가와 주변의 이야기들이 작품에 등장할 것 같다. 줌-인 된 시야에서만 포착되는 것들이 아직 많이 남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가의 말을 빌리면 ‘큰 작품은 큰 작업실에서’ 하는 것이 편리하니, 대형작품의 등장까지는 아직 시일이 남아 보인다. 그동안 우리는 보다 가까이에서 밀도가 높아진 작품을 감상하면 될 것이다. 미시적인 이야기는 모두의 공감을 얻기 힘들겠지만, 그만큼 더 생생하게 다가올 것이다. 어차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삶은 존재하지 않으니 말이다.

1) 황석권, 「교과서에 사로잡힌 인생」, 2017

2) 황정인, 「불안과 체념에 관한 회화적 소고」, 2018

3) 안소연, 「그림 아래 가둔 현실의 요란함」, 2018